융릉과 건릉은 누구의 무덤일까? 사도세자와 정조가 나란히 잠든 조선왕릉
창덕궁 후원에 처음 들어가면 궁궐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높은 전각과 넓은 마당 대신 숲길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연못과 정자가 나타난다. 계절에 따라 풍경도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후원을 왕이 산책하거나 쉬기 위해 만든 아름다운 정원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후원에서 이루어진 일은 휴식만이 아니었다.
왕은 이곳에서 학문을 논했고, 신하들과 시간을 보냈으며, 연회를 열거나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정조 시대에는 부용지 일대에 규장각과 주합루가 자리하면서 왕의 학문과 정치가 자연 속 공간과 연결됐다.
창덕궁 후원을 방문한다면 나무와 연못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이런 질문을 하나 가지고 걸어보자.
조선의 왕은 왜 궁궐 깊숙한 정원에 이런 공간들을 만들었을까?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됐다.
후원은 그다음 해인 1406년 처음 조성되기 시작했다.
1463년 세조 때 확장됐지만 임진왜란으로 창덕궁과 함께 소실됐고, 이후 여러 왕대를 거치면서 다시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후원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공간이 한 시대에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조 시대부터 순조 시대까지 옥류천, 규장각과 주합루, 애련지, 의두합, 연경당 등 여러 공간이 계속 추가됐다.
그래서 창덕궁 후원은 특정 왕 한 사람의 정원이라기보다 여러 시대의 왕들이 필요에 따라 공간을 더하면서 만들어낸 장소에 가깝다.
후원을 걸으며 건물마다 만들어진 시기를 살펴보면 같은 숲 안에서도 서로 다른 조선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후원에 들어가 처음 만나게 되는 대표적인 공간 가운데 하나가 부용지 일원이다.
이곳에서는 정자 하나만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잠시 멈춰 연못 주변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연못과 부용정, 주합루, 영화당 등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원의 특징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궁궐의 건축물이 자연을 완전히 밀어내고 들어선 것이 아니라 연못과 언덕, 나무 사이에 각각 다른 높이와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앞의 넓고 평평한 조정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분명하다.
창덕궁이 주변 지형에 맞춰 건축물과 정원을 배치했다는 특징을 눈으로 확인하기 좋은 곳이 바로 부용지 일원이다.
부용지를 바라보면 독특한 형태의 작은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부용정이다.
이곳에서는 건물의 크기보다 건물과 물의 관계를 살펴보자.
부용정은 연못과 밀접하게 연결된 위치에 자리한다.
정자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 연못 건너편에서 정자를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든다.
조선의 정원을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건물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물에서 무엇을 바라보게 할 것인지까지 공간 구성의 일부로 생각했다.
따라서 후원의 정자를 볼 때는 정면 사진 한 장만 찍고 이동하지 말자.
'이 정자에 앉으면 무엇이 보였을까?'
이 질문을 해보는 것이 좋다.
왕과 왕실 사람들이 보았을 연못과 숲의 방향을 생각해보면 정원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건축물과 함께 설계된 공간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부용지에서 시선을 조금 위로 올리면 높은 곳에 자리한 건물이 보인다.
주합루다.
부용지 주변을 처음 보는 사람은 연못과 부용정에 시선을 빼앗겨 주합루를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은 창덕궁 후원의 역사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장소다.
정조는 즉위한 1776년 부용지 일원에 주합루와 규장각을 조성했다.
규장각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왕실 도서관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학문을 진흥하고 인재를 육성했으며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펼쳐나갔다.
이 사실을 알고 부용지에서 주합루를 바라보면 후원의 의미가 달라진다.
아래에는 연못과 정자가 있고 위쪽에는 왕의 학문과 연결되는 공간이 자리한다.
휴식을 위한 정원과 학문을 위한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정조를 생각하면 수원화성이나 개혁정치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창덕궁 후원 역시 정조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정조는 학문과 정치를 밀접하게 연결했던 왕이다.
즉위한 해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여러 인재를 등용했다.
그 공간이 궁궐의 깊숙한 후원, 부용지 일대에 자리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오늘날 우리는 업무공간과 휴식공간을 명확하게 나누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의 왕에게 후원은 그렇게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학문을 논하기도 하며 신하들과 관계를 맺는 여러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실제로 창덕궁관리소도 후원을 왕실의 휴식뿐 아니라 학문 연마, 풍류, 연회와 문무 시험 등이 이루어진 장소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부용지를 걸을 때 '왕의 정원'이라는 말에서 정원보다 왕이라는 단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왕에게 필요한 여러 기능이 자연 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부용지 일대를 지나면 애련지 권역을 만나게 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공간은 연꽃과 관련이 있다.
'애련'은 말 그대로 연꽃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연꽃은 진흙에서 자라면서도 깨끗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동아시아 유교문화에서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식물로 자주 사용됐다.
따라서 애련지를 볼 때 단순히 연꽃이 있는 예쁜 연못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당시 사람들에게 연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떠올려보면 좋다.
궁궐의 정원에서 식물은 단순한 장식만은 아니었다.
그 식물이 가진 상징과 이름이 공간의 의미와 연결되기도 했다.
계절에 따라 연꽃이 보이지 않더라도 애련지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이 공간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창덕궁 후원의 매력은 거대한 건축물이 연속해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부용지와 애련지를 비교해보면 연못의 크기와 주변 건물, 숲과의 관계가 서로 다르다.
같은 후원 안에서도 공간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애련지에 도착하면 부용지와 무엇이 다른지 한번 비교해보자.
연못 주변의 나무가 어떻게 배치돼 있는지, 정자가 물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시야가 열려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찾기 시작하면 후원이 단순히 비슷한 정자와 연못을 반복해서 보는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이 보인다.
각 공간마다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후원을 더 걸으면 연경당 일원을 만나게 된다.
연못과 정자를 중심으로 보던 풍경에서 다시 건축공간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연경당은 1827년 순조 때 조성됐다.
부용지의 주합루가 정조 시대와 연결된다면 연경당에서는 그보다 뒤의 조선 왕실을 만나게 되는 셈이다.
연경당에서 특히 눈여겨볼 것은 궁궐 안의 다른 주요 전각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화려한 단청을 강조한 정전과 달리 비교적 소박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궁궐 건물은 모두 화려하다'라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다.
궁궐 안에서도 건물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른 건축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쉽게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건물 사이의 길이다.
관람객은 보통 부용지나 주합루처럼 이름이 알려진 장소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걷는다.
하지만 후원에서는 이동하는 과정 자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길이 항상 일직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숲 사이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야가 갑자기 열리면서 연못이나 정자가 나타난다.
이런 경험은 창덕궁이 자연지형에 맞춰 조성된 궁궐이라는 특징과 연결된다.
창덕궁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도 건축물과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면서 지형에 적응한 공간 구성이 중요한 가치로 평가됐다.
따라서 후원에서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려고 하기보다 목적지 사이의 길도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앞선 글에서 경복궁과 창덕궁의 차이를 살펴봤다.
경복궁에서는 광화문에서 근정전으로 이어지는 중심축과 넓은 조정이 강하게 느껴진다.
창덕궁 후원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넓은 평지 대신 높낮이가 있고, 직선보다 굽은 길이 많으며, 건물 사이로 숲과 연못이 적극적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두 궁궐을 모두 방문한다면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지를 비교하기보다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느꼈던 질서와 창덕궁 후원 부용지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같은 조선 왕실이 만든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두 궁궐을 함께 보는 재미다.
창덕궁 후원은 일반적인 공원처럼 모든 길을 언제든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국가유산과 자연환경 보호, 안전 문제 등에 따라 관람 가능한 구역과 동선이 변경될 수 있다.
특히 일부 구역은 보수공사나 보호조치로 출입이 제한되기도 한다.
따라서 오래된 블로그 글이나 여행 후기에 나온 코스를 그대로 기대하기보다 방문 직전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의 창덕궁 관람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사진에서 본 장소가 현재 관람동선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원은 '얼마나 많은 장소를 보았는가'보다 허용된 동선을 천천히 걸으며 각 공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장소다.
창덕궁 후원의 모든 건물 이름과 연도를 외울 필요는 없다.
처음 방문한다면 세 가지만 기억해도 좋다.
부용지에서는 연못과 건물을 함께 본다.
주합루에서는 정조와 규장각을 떠올린다.
애련지에서는 자연과 공간에 붙여진 이름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길을 걸을 때 주변의 높낮이와 숲을 한 번씩 바라보자.
그렇게 걸으면 창덕궁 후원은 단순히 사진이 잘 나오는 왕실 정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왕이 쉬고, 공부하고, 신하를 만나고, 때로는 시험과 연회를 열었던 공간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구성됐는지를 조금씩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그대로 즐기면 된다.
다만 그 풍경 안에서 조선의 왕들이 무엇을 했는지까지 발견한다면 창덕궁 후원은 이전과 전혀 다른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내부링크 추천: 창덕궁과 경복궁은 무엇이 다를까? 직접 걸으면 보이는 두 궁궐의 차이]
창덕궁 후원을 보기 전에 경복궁과 창덕궁의 전체적인 공간 배치 차이를 먼저 이해할 수 있다.
[내부링크 추천: 경복궁에서 꼭 봐야 할 장소 7곳, 걸으면서 읽는 조선의 역사]
창덕궁과 비교하면서 경복궁의 주요 공간을 살펴볼 수 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 소개·역사」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 관람코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 후원 관람동선 안내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Changdeokgung Palace Complex」
※ 후원 관람동선과 공개 구역은 보수·보존·계절 등의 사유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실제 방문 전 공식 창덕궁 관람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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